
‘산재와의 전쟁’을 치를 노동안전 관련 법률 개정안이 몇 달째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산재에 취약한 하청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주고, 산재다발 기업에 과징금을 물리는 내용의 법안들이다. 지난 2월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고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는데도 번번이 본회의 안건으로 오르지 못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재보험법 개정안
소관 상임위서 올려도 두 달 넘게 지연
국회는 2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난임치료휴가의 유급기간을 현행 2일에서 4일로 확대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과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 법안 100여건을 의결했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직장내 성희롱 과태료 부과 대상에 법인의 대표자와 그 친족을 명시하는 조항도 함께 개정됐다. 지난 7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22일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여야 이견이 없는 법안이라 빠르게 본회의로 직행했다.
두 법안보다 먼저 기후노동위에서 처리된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상정시점이 오리무중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작업중지의 요건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우려되는 경우’로 바꾸고, 하청노동자가 원청에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최근 1년간 노동자 3명 이상이 사망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산재보험법 개정안에는 산재 국선대리인제의 법적 근거를 담았다.
유독 이 두 개정안만 본회의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있다. 근로감독관 명칭을 노동감독관으로 바꾸고, 임금체불 법정형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하는 노동감독관 직무집행법안과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은 비슷한 시기 기후노동위를 통과해 이미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원청에 작업중지·국선대리인 조력 ‘요원’
“기업 똑바로 활동하겠냐”는 야당에 막혀
산재 감축을 주요 국정방향으로 추진하는 정부를 국회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해당 개정안들은 정부가 여당에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지난해부터 통과를 요청했던 법안이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안전종합대책과 올해 예산안, 국정과제와 관련돼 있다.
국회가 입법을 미루는 사이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 집중됐다. 본지가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발생보고 현황(2022년 1월~2025년 12월) 전수를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중대재해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업장은 ㈜대우건설이었다. 14건의 사고로 15명이 숨졌는데, 노동자 15명 모두 하청 소속이었다. <본지 2026년 4월22일자 4면 “[단독 - 중대재해 발생현황 전수 분석] 4년간 2천436명 죽었는데 실형은 단 ‘6%’뿐” 기사 참조>
이날 본회의 통과가 무산된 산업안전보건법·산재보험법 개정안이 현장에서 작동했다면 ㈜대우건설 하청노동자는 원청에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2022년 3건(3명), 2023년 2건(2명), 2024년 6건(7명), 2025년 3건(3명)으로 사망사고가 4년 내내 발생한 ㈜대우건설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대우건설 산재 피해 노동자의 유가족은 사회취약계층이라면 국선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이 법안 처리를 줄곧 반대했다. 기후노동위에서부터 법안이 충분히 숙고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국민의힘쪽의 요청으로 잠시 공개로 전환된 지난 2월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등록말소가 겁나서 똑바로 활동을 하겠냐”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고용노동소위와 기후노동위 전체회의에서 각각 항의한 뒤 퇴장했다.
국민의힘은 특정 직역단체의 입장도 대변하고 있다. 지난 2월 법사위에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신청 단계에서부터 (산재 국선대리인이 사건 대리를) 하게 되면 공인노무사의 역할이 아예 없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변론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