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지난 4일로 윤석열씨가 탄핵된 지 꼭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탄핵 광장을 채웠던 시민들은 권력을 교체했고, 새 정부는 사회 전 부문에서 개혁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회복하고 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6’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 지수는 지난해 41위에서 올해 22위로 뛰어올랐다. 국무회의, 부처 업무보고에서는 대통령과 정부부처 고위관료, 공공기관장까지 생중계되는 방송에서 시민이 좀처럼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정책의 논리구조를 자신의 목소리로 소개했다. 국민의 알권리는 신장됐다.
분명 정치 민주주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일터로 눈을 돌리면 바뀐 세상을 체감하기 쉽지 않다. 비상계엄에서 보듯 정치 민주주의가 죽고 사는 문제로 진화하는 것처럼, 일터에서도 민주주의가 같은 영향을 준다. 14명이 목숨을 잃은 안전공업 사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안전공업 사업주는 평소에 이렇게 두면 위험하니 조치해 달라는 사업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종사자들에게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이 있는지 들으라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있고, 더군다나 오래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인데도 그랬다.
공장 문앞에서 멈춘 민주주의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인데 50명 미만 사업장이나 50억원 미만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351명이었다. 2024년에 비해 12명이나 늘었다. 특히 5명 미만이거나 5억원 미만 현장에서 174명이 숨졌는데, 이는 1년 전에 비해 22명이나 증가했다. 작은 사업장일수록 위험하다는 뜻이다.
숫자로만 보면 죽음의 거리와 노동조합 조직현황은 반비례한다.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곳에서 산재가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때, 즉 노동자들이 뭉치고 목소리를 내고 사업주와 대등하고 협상할 때 산재는 줄어든다. 올해 초 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업무보고에서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말했듯, 일터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대부분 소규모 민간 사업장에는 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노조 조직률은 13%다. 공공부문이 71.7%고 민간부문은 9.8%에 불과하다. 300명 이상 사업이 35.1%, 100~299명 사업장이 5.4%, 30~99명 사업장 1.3%, 30명 미만 사업장은 0.1%다. 지난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노조 조직률은 1995년 이후로 15% 벽을 넘은 적이 없다.
노조 없는 사업장의 근로자대표
여전히 제도 미흡, 사용자는 악용
노동시장 이중구조 고착화와 고용형태 다변화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가 해가 갈수록 늘어나며 노동자를 대변할 조직을 만드는 일은 더 꿈 같은 일이 되고 있다. 노조를 조직하기 어려운 곳에서 노조를 대신해 노동자가 대등한 협상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적인 보장책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를 두고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조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가 대표를 선출하고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근로자대표제와 노사협의회를 내실 있게 만들자는 제안이다. 근로기준법과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르면 근로자대표는 노사협의회에서 사용자와 작업환경·교육훈련·고충처리·복지제도 개선 등을 협의한다. 사용자는 경영·인력계획과 재무상황을 근로자대표에게 보고한다. 과반수노조가 있는 경우 과반수노조가 근로자대표와 근로자위원을 위촉한다.
근로자대표가 사용자와 협상해야 하지만 관련 제도는 허점투성이다. 현장에서는 사용자가 이를 악용해 임의로 근로자대표를 정하고, 유연근로제·재량근로제를 도입해 노동자에게 불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2020년 게임업체 펄어비스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안경·향수 브랜드 젠틀몬스터·탬버린즈를 운영업체 아이아이컴바인드도 근로자대표와 재량근로제 도입과 휴일근로 대체에 합의하며 디자이너 과로·공짜노동 논란이 불거졌다. 노동자는 근로자대표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다.<본지 2026년 1월5일자 [단독] “주 70시간 켜진 등대” 젠틀몬스터 청년 디자이너 ‘과로·공짜노동’ 기사 참조>
전문가들은 대표 선출 절차와 권한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경영학) 교수는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대표와 협의·결정할 사항이 30여개가 된다”며 “대표 선출 절차나 권한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자대표성이 여러 법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노동자 대표기구가 노조로만 수렴된다”며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사·정은 2020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근로자대표제도 개선에 관한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과반수노조가 없고 노사협의회가 있는 경우에는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된 근로자위원들로 구성된 ‘근로자위원 회의’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대표 지위를 가진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합의는 아직까지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갈 길 먼 공공기관 노동이사
법으로 정해진 일터 민주주의 관련 제도도 힘을 받지 못한다. 노동이사제가 대표적이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공공기관에서 우선 실시했고, 앞으로 민간기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재명 정부도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정과제에 노동이사제 확대 및 활성화 계획을 담았다.
노동이사로 선출되면 노조에서 탈퇴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은 노동이사의 힘을 빼고 있다. 노동이사는 본업을 하면서 이사를 겸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근무평정 권한을 갖고 있다. 이사회에서 사용자쪽 의견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면 인사 불이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수자원공사 노동이사인 권용범 국가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 부의장은 “노동이사의 노조 탈퇴는 헌법상 권리인 단결권을 원천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라며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120다사콜재단 노동이사인 박경은 전국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 상임의장은 “중앙정부가 제도 운영 실태를 책임 있게 점검하고, 최소한의 공통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두 노동이사협의회는 5월 대한민국노동이사협의회로 통합한다. 노동이사제도 개선에 한목소리를 낸다는 계획이다. 이들의 요구 중 하나는 지방공기업 노동이사제 법제화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운영되는 중앙공공기관과 달리, 지방공공기관은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노동이사 근거를 두고 있다. 지자체 성향에 따라 노동이사 임명 여부가 갈린다. 지난해 1월 기준 18개 시·도 중 6곳은 조례가 있지만 노동이사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