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로마신화 속 아틀라스는 세계의 끝에서 천구를 짊어지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거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산업현장의 무게를 로봇이 짊어지는 상징에 착안해 생산현장에 도입할 피지컬 인공지능(AI)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아틀라스가 짊어진 것은 산업현장의 중량물이 아니라 AI와 노동의 문법에 대한 질문이다. 신화는 시간에 풍화했지만, 질문에 정답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매일노동뉴스>는 3회에 걸쳐 아틀라스의 현재와 AI의 산업현장 진입 과제, 그리고 사람과의 공존을 묻는다. <편집자>
<연재 순서>
① 아틀라스는 무엇을 보고 배울까
② 망각과 환각 ‘로봇도 잊는다’
③ 인간을 닮은 로봇이 향하는 곳은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 도입을 두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첫 단계는 2028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부품 분류 및 서열작업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어 2030년부터 부품 조립까지 작업 범위를 넓힌다. 이런 단계적 투입방식은 그 자체로 아틀라스의 현재 수준을 대변한다.
부품 분류와 서열작업을 보자. 완성차 생산공정에서 부품 분류와 서열작업, 그리고 불출은 협력사가 주로 맡아온 업무다. 부품 분류는 다시 부품 선별과 서열업무로 구분한다. 자동차 조립공정에 맞게 팔레트에 부품을 분류하고, 조립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게 부품서열이다. 고도로 자동화되고 분업화된 자동차조립 공정에서 1분1초라도 시간지연을 줄이기 위해 부품서열은 매뉴얼 같은 원청 통제 아래 놓인다. 불출은 이렇게 부품이 배열된 팔레트를 실제 공정으로 옮기는 업무다. 무겁고 힘들지만 어렵거나 고숙련이 필요한 업무는 아니다.
2030년 목표도 이어서 살펴보자. 부품 조립 업무에 투입한다는 것인데, 목표는 의장라인으로 보인다. 의장라인은 각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만든 프레임과 부품모듈을 한데 합쳐 하나의 자동차를 완성하는 최종공정이다. 현대차를 기준으로 가장 자동화율이 떨어지는 공정으로 알려져 있다. 정밀작업이 많기 때문이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은 “의장라인 업무 자체가 난도가 매우 높은 작업은 아니나 정밀작업이 많고 인간의 다양한 신체기능을 사용해야 해 자동화가 쉽지 않다”며 “용접라인도 정밀한 작업을 요하지만 규격화한 방식으로 오차범위 내에서 처리할 수 있어 자동화율이 100% 수준에 달해 비교된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암묵지’가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의미다.
5년 뒤 생산공정 투입, 인간 대체 ‘실증’할까
그래서 2028년과 2030년은 본질적으로 다른 시간표다. 발표는 2028년 단순업무, 2030년 정밀업무에 마치 계단식으로 AI를 투입하겠다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올해 1월 발표 이후 2030년까지 5년간 직접생산공정에 AI를 한꺼번에 도입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소장은 “2028년의 부품 분류·서열·불출 업무에 숙달한 AI 로봇이 출시됐다고 해서 2030년 직접생산공정 투입이 용이하거나 쉬워지는 것이 아니다”며 “지금 시점부터 2030년을 향한 학습을 시작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비로소 AI의 쓸모가 탄생한다. 사실 부품의 분류와 서열, 그리고 불출에 쓸 로봇이 AI까지 탑재해야 할 필요는 크지 않다. 이미 불출업무에는 이동로봇이 투입되기도 했다.
2030년의 목표는 다르다. 의장업무는 페인트칠(도장)까지 마친 차체에 2만개가량의 부품을 조립해 넣는 일이다. 그러면서 배선과 배관작업 등도 해야 한다. 물론 한 명이 다하는 것은 아니다. 컨베이어벨트에 따라 정해진 업무를 한다. 아틀라스가 해야 하는 것은 이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뤄지는 인간의 일을 학습하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인간을 대체할 여지는 커진다.
원칙적으로 바로 이 대목에서 AI와 인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학습이다. AI는 인간이 생산한 데이터를 학습해 업무를 익힌다. 소비자전자제품 박람회가 열렸던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아틀라스가 준 시각적 충격은 물론 컸지만, 학습을 통해 결과를 산출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 없는 학습 계획? 최초 데이터는 있다
지금 현대차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거로 보인다. 인간 없는 학습에 대한 기대다. 현대차가 지분을 소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올해 미국에 개소하는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센터에서 아틀라스 학습과 훈련을 진행한다. 현대차 계획은 응용센터에서 학습한 훈련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에서 학습한 실전 데이터를 되먹임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은 공장의 모든 영역이 데이터화한 것이다. 이 데이터를 아틀라스에 학습 및 훈련 시킨 뒤 응용센터에서 실제 공정을 재현해보고 이를 다시 데이터화해 로봇 행동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공장의 모든 데이터가 로봇을 위해 축적되고, 로봇은 이를 학습해 다시 공장을 가동하는 이상적인 형태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아틀라스에게 학습할 최초의 데이터는 어디서 오는가다. 노동자가 산출한 데이터가 없다면 학습은 불가능하다. AI가 AI를 학습해도 결과는 1 더하기 1은 2다.
공장으로 돌아가보자. 자동화율이 낮은 것은 그만큼 오차의 범위가 크고, 노동자의 숙련이 반영된다는 의미다. 암묵지다. 박근태 연구활동가(전 금속노조 부위원장)는 “현대차 공장 내 업무 모습을 촬영하거나 하는 것이 허가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쪽 역시 관련한 시각정보를 갖고 있거나 활용하지 못할 것”이라며 “향후 2030년까지 정밀작업에 AI를 투입하겠다면 해당 정보에 대한 학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현대차가 수십년간 공장을 돌리면서 축적한 데이터와 그를 바탕으로 한 매뉴얼이 이미 암묵지를 흡수했다는 견해도 없지는 않다. 조선업 피지컬 AI 개발에 관여하는 한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에 “거대한 선박을 용접하고 만들어야 하는 조선업과 비교하면 완성차는 컨베이어벨트를 근간으로 일정한 업무를 반복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암묵지가 개입하는 정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케)는 “개인정보 가운데 신체정보는 노동자의 개별 동의가 필수고, 업무용 데이터는 사용자가 소유권을 주장해 볼 수 있다”며 “그러나 공장업무에서 어디까지가 신체정보이고 어디까지가 업무용 데이터인지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국, AI 특례로 ‘정보 주권’ 백도어 설치
암묵지가 있고, AI 학습을 위해 사용자가 이를 필요로 한다면 현대차에 국한해 노사 전선이 형성될 여지가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업무 노하우 관련한 개인정보 쟁점에 민감하지 않았다”며 “향후 검토해볼 계획”이라고 답했다.
다만 전선의 기준이 될 개인정보, AI 학습과 관련한 국내 규범은 다소 이례적이다. 개인정보는 개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상례와 달리 우리나라 법·제도는 지름길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1월부터 시행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인공지능기본법)이 이 분야 규범을 형성한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적법하게 수집된 개인정보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원본데이터를 가명처리 없이 학습데이터로 쓸 수 있는 AI 특례를 도입하기로 했다. AI 학습데이터를 명분으로 일종의 ‘백도어’를 둔 셈이다.
물론 그럼에도 사용자에게 유리한 전장은 아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국적 때문이다. 현대차가 지분을 80% 소유하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자회사지만, 미국법인이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개인정보를 국외 유출하는 시도는 AI 학습데이터 활용 이전에 개인정보의 해외반출 대목에서 쟁점이 될 여지가 크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업무용 데이터로 파악해 노동자의 동의 없이 학습용 데이터를 축적하더라도 이를 해외 법인으로 옮겨 학습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의 선택지가 없진 않다. 아예 해외공장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테스트베드로 활용될 싱가포르공장과 미국 앨러배마공장 등 현대차공장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나라라고 개인정보를 소홀히 하진 않는다.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지난해 8월 펴낸 AI 산업전환을 위한 데이터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AI 학습 투명성 확보를 위한 법률을 발의하고, AI 저작권 공개 법안을 발의해 학습데이터의 투명성 확보를 의무화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데이터법을 제정해 데이터에 대한 개인 통제권을 강화하고 2024년 AI법을 발의해 AI의 작동 방식과 데이터 활용 과정을 명확히 하고 데이터 수집에 당사자 동의를 필수로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