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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1일 부터 다시 출근합니다”
글쓴이 현대위아노조 작성일 2016-01-21 0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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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현장] 해고 7년, 정규직 복직 유제선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성민규, 사진=김형석  
 

“2월1일부터 다시 출근합니다.”

복직날짜를 묻자 유제선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을 때 복직을 체감하지 못했지만 날이 갈수록 복직의 기쁨과 복직이후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합의서에 하청업체 입사일, 고용간주일, 근속연수와 호봉까지 명시했다. 해고기간 경력까지 모두 인정하기로 했다. 지회는 마땅히 받아야 할 해고기간 체불임금은 받지 않기로 합의했다. 대신 지회 조합원 여섯 명이 모두 정규직 복직하기로 매듭지었다.

   
▲ 유제선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공장 복귀 소식을 전하며 밝게 웃고 있다. 유 조합원은 "5년이 든, 10년이든 동지들만 있다면 함께 싸울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평택=김형석

유제선 조합원은 합의 결과를 얘기하며 “오는 25일이 쌍용차 불법파견 2심 선고일이다. 불법파견 요건을 모두 갖췄기 때문에 선고결과가 뻔하다. 우리가 승소할 수밖에 없는 재판이다”고 말했다. 유제선 조합원은 “회사는 우리가 받아야할 체불임금까지 계산해 알려줬다. 4억원에서 4억3천만원 정도였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확정 받으면 복직과 함께 밀린 임금을 받아 장가 밑천으로 쓸 생각 이었다”며 웃었다.

서맹섭 지회장, 유제선, 복기성, 한윤수 조합원이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불법파견 재판은 2012년 9월부터 시작했다. 네 조합원은 회사의 불법파견을 증명할 자료를 확보했기 때문에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이번 합의가 아니더라도 대법 판결로 복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던 셈이다.

왜 승률이 높은 재판을 앞두고 회사에 양보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는 지부와 지회가 한꺼번에 투쟁을 정리하고 모두 함께 공장에 돌아간다는데 의의를 뒀다고 얘기했다. 지회 조합원 여섯 명의 한 날 한 시에 복직이 지회 입장에서는 큰 성과라고 했다.

 

한 날 한 시 비정규직 지회 여섯 명 복직

유제선 조합원은 “밀린 임금을 포기하고 복직한다 하니 주변에서 전화가 많이 왔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들었다”며 “자기 혼자 복직하거나 돈을 더 챙기려고 시작한 투쟁이 아니었다. 바보 취급당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유제선 조합원은 쌍용자동차에서 비정규직으로 8년 일하다 해고됐다. 공장에서 일한 시간과 비슷한 기간 해고자로 공장 밖에서 보냈다. 공장에 돌아가기 위해 20대 후반의 청년은 30대 중반에 접어들 때까지 온갖 투쟁을 벌였다. 평택 토박이인 유제선 부지회장은 투쟁을 위해 연고도 없는 서울에 3년간 머물렀다. 노숙농성과 선전전은 생활이었다.

   
▲ 항상 밝은 유제선 조합원이지만 공장 복귀를 놓고 아쉬운 점과 힘들었던 결정과정을 말하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유 조합원은 이 와중에 안면도 없는 이들이 지어내는 비난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평택=김형석

유제선 조합원은 “2009년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솔직히 쌍용차를 나가도 얼마든지 일자리는 구했을 것이다. 싸움에 나선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털어놨다. 유 부지회장은 “8년 동안 일했는데 한순간 필요 없다고 내쫓는 현실에 모멸감을 느꼈다. 그래서 1년만 싸워보자고 결심하고 투쟁에 나섰다”고 돌아봤다.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이었다. 싸움을 시작할 당시 쌍용차의 미래는 안개 속이었다. 비정규직인 유제선 조합원이 정규직으로 복직할 수 있다고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 조합원은 복잡한 미래를 고민하며 투쟁을 그만두고 싶을 때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붙잡아줬다고 말했다. 특히 대한문 투쟁은 유제선 조합원에게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내년에 싸움 그만하고 내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내 젊음이 함께 사라진다고 느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살길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유 조합원은 “망설임과 고민이 대한문 투쟁을 거치며 해소됐다. 전국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다른 투쟁사업장 동지들을 보며 내가 너무 약한 마음으로 싸우고 있었다는 점을 절감했다.”

 

대한문 투쟁, 투쟁의 변곡점

유제선 조합원은 쌍용자동차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었다.

“쌍용자동차에 오기 전 친구들과 함께 포장마차를 차려 장사를 했다. LG전자의 물류 포장일도 했다”며 “지인의 소개로 쌍용차 협력업체에 입사했다. 그때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도 정규직노조의 선전물을 보고 내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소개했다.

쌍용자동차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이 있었다. 임금과 업무량, 퇴직위로금도 많이 차이 났다. “심지어 희망퇴직 위로금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이 있었다. 2006년 희망퇴직 신청 받을 때 정규직은 24개월 임금을 위로금으로 줬다. 비정규직이지만 절반은 나올 줄 알았는데 4개월치 임금만 위로금으로 받았다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유제선 조합원은 잠시 다니다 마는 호구지책으로 생각했지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점점 노동자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보며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더 좋은 직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동자의식이 생겼다.

서맹섭, 복기성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2008년 10월20일 지회를 띄웠다. 하루만에 150명이 가입하고 반응이 뜨거웠다. 회사가 대놓고 비정규직 해고를 말하고 다니니 조합을 만들어 막아보자는 의지가 모였다.

   
▲ 유제선 조합원은 낙관적인 성격이지만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유 조합원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해고 투쟁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무렵 대한문 앞 농성 투쟁을 벌이며 수많은 금속 조합원과 시민들로부터 싸울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평택=김형석

유제선 조합원은 “그때 복기성 동지가 회의에 나와서 얘기 좀 들어보라고 해서 갔는데 그 길로 코가 꿰었다. 교육을 1주일에 4~5회를 잡고 정말 무식하게 일했다”며 “같은 해 12월 한상균 집행부가 들어서며 원하청 공투와 생존권 지키키 투쟁에 나섰다. 점점 할일이 늘어났다”고 회상했다.

2009년 파업을 겪으며 조합원 대다수가 희망퇴직에 동의하며 회사를 그만두고 떠났다. 유제선 조합원은 떠나는 동료들을 잡기 위해 1대1로 만나 읍소하고 쫓아다니며 퇴직서 서명을 만류했지만 떠나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 가슴속에 바위덩어리가

유제선 조합원은 “다음 달부터 복직한다고 가족에게 얘기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내 해고문제가 가슴을 짓누른 바위덩어리였다고 얘기하셨다. 가족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셈이다”며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바위덩어리가 영원히 어머니 가슴에 남았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그런 아픔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쌍용자동차지부는 얼마 전 신임 지부 임원을 선출했다. 지부 조합원들은 윤충렬 부지부장과 고동민 사무국장을 김득중 지부장과 함께 지부 임원으로 선출했다. 신임 임원들은 합의 이행과정을 지켜보고, 교섭의 뒷정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만큼 복직순번도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지부 새 집행부가 쌍용차 투쟁 7년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교섭결과를 놓고 아쉬움과 비난,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장 복귀를 앞두고 누가 먼저 들어갈 것이지 조합원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중이기도 하다. 몇몇 조합원은 아예 전화를 걸어 앞 순번에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고 요청하는 중이기도 하다.

유제선 조합원은 지부임원 선거결과를 두고 “합의내용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김득중 지부장이 마무리까지 지으라는 얘기다. 본인도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했다”며 “이미 총회에서 적은 표차이긴 했지만 교섭안이 통과됐다. 교섭이 부족했다는 얘기를 다시 꺼내는 사람은 일해야 할 사람들을 흔드는 사람이다.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 명찰과 붉은 투쟁 리본이 달린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있는 유제선 조합원은 작년까지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임원이었다. 햇수로 8년만에 공장으로 돌아가는 유 조합원은 "기대뿐 아니라 걱정과 두려움이 있지만 동료들과 함께 헤쳐나가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평택=김형석

복직순서에 대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말했다.

“지침을 충실하게 따른 조합원이 우선 복귀해야한다. 윤충렬 부지부장은 대법원 해고무효 재판에서 판사에게 조합원으로서 지침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패소했다”며 “만약 조직의 지침대로 따르지 않고 각자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움직였다면 우리 투쟁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조직 지침 따른 7년 투쟁의 결과다”

복직을 앞둔 조합원들과 활동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냐고 묻자 유제선 조합원은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은 일에 적응하느라 여러 부분을 돌볼 여유가 없을 것 같다. 회사가 복귀한 조합원들을 한자리에 모여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쌍용차가 주간연속2교대를 도입하고 조합원들을 조속히 복귀시켜야 한다. 또한 지금 공장안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과 감정의 앙금을 빨리 씻어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제선 조합원은 “복직을 해도 걱정이다. 지금 쌍용자동차의 노동강도가 많이 올라갔다고 들었다. 얼마 전 차 시트를 직접 갈아봤는데 조금 해보니까 손에 척척 달라붙더라. 며칠만 일하면 현장 감각이 금방 살아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제선 조합원은 복직하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며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도 할 생각이다. 투쟁이 길었던 만큼 만날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용산, 강정, 밀양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인연도 다잡을 계획이다. 유제선 조합원이 가입한 지부 노래패 <해피먼데이>가 1월25일 용산참사 피해자들을 위해 노래공연을 할 예정이다.

“어찌됐든 7년 싸움의 한 단락을 마무리했다. 우리 투쟁의 기억이 불행하지 않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동지들이 모두 복직하면 폭풍이 걷히고 새싹이 번지듯이 쌍용자동차 현장에 조금씩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까지 힘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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