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임단협에서 노사 간 최대 쟁점은 상여금 등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였다. 그리고 당시 현대차 그룹 계열사 노사는 추후 재협의하기로 일단락 짓는 수준에서 지난해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라든가 ‘임금체계 개선 노사공동위원회’ 등을 노사가 공동으로 꾸려 올 3월 31일까지 시행시점을 포함한 통상임금 개선방안을 합의해보자는 것. 이것이 모든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사가 맺은 지난해 약속이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재협의 결과를 보고 재논의하기로 지난해 노사 간에 합의한 곳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미 4월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까지 현대차그룹 관련 기업 어느 곳도 재협의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 곳은 없다. 2015년 봄, 우리의 현장은 여전히 ‘임금’ 문제로 시끄럽다. 그리고 대부분이 현대차그룹만 쳐다보고 있는 모양새다.
지금, 현장은 임금문제로 시끄럽다
현대차 그룹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는 지난달 25일 기아자동차 사측이 노사공동위원회 때 제출한 사측안과 이번 달 2일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 때 제시된 현대자동차 사측안을 합쳐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지난 달 25일 기아차 사측은 ▲직무 난이도 등을 고려한 직무관련 수당 재정립 ▲수당항목 통폐합 ▲직무가치와 숙련, 시장가치와 생산성 등을 반영한 임금제도 ▲개인별 성과지표 반영 성과상여제도 등을 골자로 한 새로운 임금체계를 도입하자고 전제를 깔면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적용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사측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더라도 현 총액임금은 유지하겠다고 선을 그어 버렸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대표적으로 잔업특근 수당이 자동으로 오르게 된다. 따라서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의 총액임금을 자동 인상시킨다. 그런데도 사측은 총액임금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사측이 내민 카드는, 통상시급, 연월차휴가, 심야근로수당, 특근개선지원금, 생리휴가, 생계보조금, 휴직급여, 퇴직금 누진제, 중식잔업, 수당 지급 기준 등의 손질이다. 총체적인 단체협약 개악안을 사측이 들고 온 셈이다.
기아차 사측의 총체적 단협 개악안
이어 현대차 사측은 지난 2일 ‘기본급+제수당+상여금+연장특근수당+연월차수당’으로 구성된 현재의 임금항목을 ‘기초급+직무수당(직무급)+부가급+연장특근수당+연월차수당’으로 그 구성항목을 바꾸자며 새 임금체계안을 들고 왔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사측은 기초급 산정을 위해 직군별 초임을 다시 설정하고 승진제도와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직무수당(직무급) 산정을 위해 노사공동으로 직무조사를 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사측은 ‘기초급×지급률’로 부가급을 산정하되 지급률 대목에서 노동자의 노력과 성과를 등급매기겠다고 속내를 공식 드러냈다.
상여금과 제수당을 기본급과 묶어 기초급으로 부른 것이니 그 명칭문제에 큰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초급을 노동자의 승진과 연계한다고 하니, 승진을 둘러싼 평가제도 도입이 의심된다. 현 수당체계 간소화의 전제로 직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니 UPH를 손보려 하는 게 아닌지 그 의도도 의심된다. 부가급 산정 과정에서 개인 혹은 부서 등을 등급매기겠다는 것도 동의하기 힘들다.
현대차 사측의 독소 투성이 새 임금체계안
그런데 현대차 사측이 이 같은 새 임금체계 도입을 내년 3월 3일 시행키로 돼 있는 8/8시간 주간연속2교대제와 때를 맞추겠다고 강조한 대목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사측의 새 임금체계에도 불구하고 총비용은 동일하다는 표현도 심히 걸리는 대목이다. 요컨대, 회사는 내년 3월 3일 이전까지 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인지 여부를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총비용이 동일하다는 표현을 에둘러 쓰면서, 만약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더라도 현 총액임금은 유지하겠다고 선을 그은 기아차 사측 제시안과 맥을 같이한 셈이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의 의중은 비로소 공개 천명된 셈이다. 현재의 총액임금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면서 그 주도권을 사측이 쥐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차 그룹의 의도다.
현대차 사측이 제시한 안에는 기존 직원 임금 저하 방지라는 표현도 담겨 있는데 이것도 사뭇 의미심장하다. 이는 현 조합원이 반발할 경우 새로 입사하는 신규인력에만 적용할 이중임금제 도입 가능성도 내포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현재 1960년생부터 1968년생이 각각 1천 5백 명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정년을 5년에서 13년 정도 남겨둔 연령대에서 현인원이 집중돼 있다는 점까지 회사가 고려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
비로소 공개 천명된 현대차그룹의 의도
한편, 지난 2일 열린 현대차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에서 이같은 안을 받아든 노동조합 측이 반발하자 사측 대표인 윤갑한 사장이 “국내공장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보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현대차 그룹은 해외공장으로의 생산물량 이동 협박의 수까지 동원할 태세임을 노동조합에 내비친 셈이다.
이에, 지난 8일 현대차지부 및 기아차지부와 현대기아차 계열사 지회 대표자들은 통상임금 정상화 쟁취를 위한 현대기아차그룹사 연대회의를 긴급하게 열었다. 이날 이들은 현대기아차 그룹 본사에 그룹사 노사 공동교섭을 급히 추진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그리고 4월 중에 일제히 쟁의조정신청을 노동위원회에 넣고 파업찬반투표도 같은 날짜에 동시에 진행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오는 24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