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공무원연금 여야 합의안의 의미와 전망
김경훈 편집부장
이번에도 사회적 합의는 없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5월2일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합의를 통한 개혁은 향후 우리 사회가 가야할 대타협의 모델을 보여줬다”고 자화자찬했다. 정작 이해당사자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아래 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반대하며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공노와 전교조가 여야 합의안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무원연금을 약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안은 공무원연금 기여율을 현행 7%에서 단계적으로 9%까지 올리고, 지급률을 현행 1.9%에서 단계적으로 1.7%까지 내림으로써 ‘더 내고 덜 받는’ 안이다. 공무원연금 약화는 공적 연금 전반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회의 노후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OECD의 「2014년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7.2%로 OECD 평균보다 4배 가까이 높다.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4.9명으로 10년째 OECD 1위인데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의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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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유로폴리틱스>와 인터뷰에서 “공적연금에 크게 의존했던 유럽 국가도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노후소득 보장체계 확립과 자본시장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취약한 공적 연금을 더욱 약화시켜 대자본의 배를 불리는 사적 연금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다. 5월1일 125주년 세계 노동절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사진=김형석 |
한국사회의 노후빈곤이 이토록 심각한 이유는 공적 연금이 적정한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3월 발표한 「노인의 빈곤과 연금의 소득대체율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45.2%로 OECD 회원국 평균인 65.9%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주요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70∼80% 수준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정부, 공적 연금 약화해 재벌 이익 보장 노려
공무원연금이 특혜처럼 보이는 이유는 다른 공적 연금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일부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귀족연금’이라 말하기 어렵다.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현행 63.1% 수준(전교조, 「2차 공적연금강화 해설서」)이다. 김연명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5월4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에서 “공무원연금 수준은 유럽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국민들이 받는 공적 연금 수준이다. 유럽 기준으로 보면 보통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공적 연금제도 개혁은 공무원연금을 약화하는 길로 가면 안 된다. 공적 연금을 강화해 공무원연금 수준에 맞춰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을 ‘귀족연금’으로 매도하며 개악하려 는 이유는 공무원연금을 시작으로 공적 연금 전반을 약화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3개 공적 연금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관련법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 가을 유럽의 시사전문지 <유로폴리틱스>와 인터뷰에서 “공적연금에 크게 의존했던 유럽 국가도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노후소득 보장체계 확립과 자본시장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취약한 공적 연금을 더욱 약화시켜 대자본의 배를 불리는 사적 연금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다.
공무원연금의 재정 건전성 문제는 정부 주장만큼 심각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월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공무원연금도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484조 원, 국민 1인당 945만 원이나 되는 엄청난 빚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484조원은 ‘충당부채’로 정부가 실제로 진 빚이 아니라 연금을 운용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금액이다. 전교조는 <2차 공적연금강화 해설서>에서 “충당부채는 미래의 발생 수입(공무원이 내는 기여금, 정부가 부담하는 부담금, 수익금 등)을 고려하지 않고 미래에 지출할 금액만 추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무원연금 재정 악화는 정부 책임
공무원연금 재정건전성이 악화하고 있긴 하지만, 주된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공적연금강화 공동투쟁본부가 낸 <공적연금설명>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공무원연금에 지출하는 돈은 0.7%로 OECD 평균인 1.5%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정부는 공무원연금의 일부를 법이 정한 것과 다른 용도로 부당 사용했다. 정부 스스로 14조원을 부당 사용했다고 밝혔고, 전공노 등은 정부가 34조원을 부당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공무원연금 재정 악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의 과소 책임과 부실 운영’에 있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을 담은 것은 성과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합의안에 국민연금 급여율 40%를 50%로 상향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은 공적 연금의 형평성 제고와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이를 실현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의 의도 자체가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해 공적연금을 약화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5월4일 “이것(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다르게 접근할 사항”이라며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청와대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사전에 몰랐다고 밝히면서 6일 예정했던 여야합의안 국회 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흐지부지되고 공무원연금 개악만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막기 위해 공적연금 강화 투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헌 전공노 정책부장은 “결국 노동자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 투쟁에 달렸다”고 말한다. 공무원연금을 시작으로 공적 연금을 훼손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가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연금가입 기간 평균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 대비 연금지급액. 연금액이 개인의 생애평균소득의 몇 %가 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