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복수노조 허용 후 처음으로 난 기업노조 설립무효 판결의 의미를 짚고, 복수노조를 노조파괴 수단으로 악용하는 현실의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사용자의 개별교섭권 남용을 제도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어용노조를 설립하면 회사의 지배·개입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만큼 행정관청이 노동조합 설립 단계에서 실질성 심사를 강화해 어용노조 설립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기업-현대차자본 처벌 한광호열사 투쟁승리 범시민대책위’(아래 유성범대위)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은수미?이인영?장하나?한정애 의원실은 4월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유성기업 노동조합 설립무효 판결 의의와 향후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자주성 없는 노조 설립은 무효 첫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4월14일 “유성기업노조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해 설립 무효”라고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유성기업노조는 설립 자체가 회사 주도로 이뤄졌고, 조합원 확보나 조직 홍보, 안정화 등 운영이 모두 회사 계획하에 수동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설립 및 운영에 있어 사용자인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자주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 | | ▲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기업-현대차자본 처벌 한광호 열사 투쟁승리 범시민대책위’와 우원식·은수미·이인영·장하나·한정애 의원실이 4월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유성기업 노동조합 설립무효 판결 의의와 향후 과제’ 토론회를 열고 있다. 김경훈 |
소송을 맡은 김상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노동조합이 자주성, 독립성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조법) 2조 4호가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노동조합 설립이 무효라고 판시한 최초의 판례”라며 이번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노동조합 설립의 효력 판단 기준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회사가 노동조합 설립 단계부터 주도했는지 여부다. 김상은 변호사는 “재판부는 특히 회사가 노동조합 조직, 운영의 핵심요소인 규약작성에 직접 관여한 사실을 중요하게 봤다”고 지적했다. 둘째, 조합원 확보, 조직 홍보, 안정화 등 노동조합 운영을 회사 계획으로 실행했는지 여부다. 김상은 변호사는 “재판부는 기업노조의 대표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노조 가입을 종용하고, 관리직 사원들이 기업노조에 가입한 사실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말했다. 김상은 변호사는 이번 판결 한계로 “기업노조 안정화, 세력화에 핵심 역할을 한 현대자동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는 유성기업에 기업노조 확대가입 추진을 지시하며 구체적인 조합원 가입 목표치를 제시하는 등 노조파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김상은 변호사는 “현대자동차 사용자들이 기소 전이라는 시점을 고려해도 현대자동차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노조 차별하면 부당노동행위” 송강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을 중심으로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문제, 특히 개별교섭권 남용을 지적했다. 유성기업은 그동안 유성기업노조의 교섭대표노조 지위 여부에 따라 개별교섭이나 교섭창구 단일화절차를 선택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유성기업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아닐 경우 유성기업은 개별교섭을 선택해 유성기업노조와 신속하게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조 유성기업지회와 단체교섭을 지연시키면서 노조파괴를 시도했다. | | | ▲ 김상은 변호사가 4월28일 ‘유성기업 노동조합 설립무효 판결 의의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유성기업노조 설립 무효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훈 |
현행 노동조합은 사용자에게 개별교섭권을 부여하고 있어 유성기업의 이 같은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보기 어렵다. 일본은 사용자의 노조 차별을 금지하는 법 해석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복수노조 상황에서 기업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사용자는 각 노동조합에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단결권을 평등하게 승인, 존중하여야 하며, 각 노동조합의 성격, 경향, 종래 운동노선 등에 따라 차별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 법원은 한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선호하는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먼저 체결한 뒤, 다른 노동조합에 먼저 체결한 노조의 단체협약에 합의하라고 요구하면서 교섭을 지연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한다. 송강직 교수는 “사용자의 개별교섭권 행사를 제도로 제한, 폐지해야 복수노조 체제 아래에서 단체교섭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질성 심사 강화해 어용노조 설립 막아야”…“한국에서는 악용 우려” 김상은 변호사는 “2011년 7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자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해 어용노조를 설립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며 노동조합설립신고증 교부 시 고용노동부의 노조 실질성 심사 강화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 | | ▲ 김성민 노조 대전충북지부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4월28일 ‘유성기업 노동조합 설립무효 판결 의의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유성기업과 노조파괴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이 연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김경훈 |
기업노조가 회사 주도로 설립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우므로 노조 실질 요건인 자주성 심사를 강화해 기업노조 설립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송강직 교수는 “노조가 노동자의 자주적인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행정관청의 노조 설립 심사 자체가 문제다. 사용자가 복수노조를 노조파괴 수단으로 악용하는 한국 현실에서 행정관청이나 고용노동부가 실질성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며 동의했다. 실질성 심사 강화를 정부가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 기준과 다르게 노동권을 규제해온 역사가 있다”며 “교섭창구 단일화를 악용했듯 실질성 심사를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민 노조 대전충북지부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직장폐쇄, 어용노조 모두 불법임이 드러났다. 조합원들이 이 상황에서도 이기지 못하면 전국 어느 사업장도 이길 방도가 없다고 말한다”며 “유성기업과 노조파괴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에 계속 연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